8세기 초, 비잔틴 제국은 단순한 신학적 갈등을 넘어 문명 전체의 시각적 정체성을 뒤흔드는 거대한 논쟁에 휩싸였다.
그것이 바로 ‘성상파괴운동’이다.
아이콘을 둘러싼 이 논쟁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물음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형상을 시각화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던졌다.
이 갈등은 예술의 자유와 신앙의 순수성, 나아가 권력의 정당성을 결정짓는 종교·정치·철학의 교차점이었다.
비잔틴 미술은 이 위기를 통해 ‘이미지’라는 것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권력과 신앙의 본질을 매개하는 상징적 언어임을 드러냈다.
이 글은 성상파괴운동을 중심으로,
①종교적 금기와 철학적 배경,
②정치권력과 신앙의 충돌,
③예술의 자기정당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를 살펴본다.

1. ‘우상’과 ‘아이콘’ 사이: 종교적 금기와 철학의 충돌
비잔틴 제국에서 성상파괴운동이 일어난 직접적 배경은 십계명의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과 관련되어 있다.
성상파괴론자들은 아이콘을 ‘우상’ 으로 간주했다.
그들에게 그림은 신성한 존재를 물질로 제한하는 행위였으며, 신의 초월성을 훼손하는 인간의 오만이었다.
반면, 성상옹호론자들은 전혀 다른 논리를 제시했다.
그들은 “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성육신 교리를 근거로 들었다.
즉, 신이 이미 물질 안에 자신을 드러내셨기에, 인간이 그 형상을 표현하는 것은 신앙의 연장이며 영적 현존의 시각화라는 것이다.
이 논쟁의 이면에는 철학적 기반의 차이도 존재했다.
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미지는 진리의 그림자, 즉 불완전한 모사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해석 속에서, ‘상징’은 보이는 세계를 넘어 보이지 않는 실재를 가리키는 통로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비잔틴의 아이콘 논쟁은 감각과 초월, 물질과 영성의 관계를 둘러싼 고대 철학의 재해석이기도 했다.
2. 신앙인가 권력인가: 이미지 통제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
성상파괴운동은 단순한 종교적 논쟁이 아니라, 제국 권력의 정치적 전략이기도 했다.
8세기 초 황제 레온 3세는 군사적 위기와 내부 혼란 속에서 아이콘 숭배를 제국의 불안정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종교적 통합을 명분으로 성상파괴를 명령했지만, 실상은 교회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황제권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컸다.
아이콘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교회와 수도원 권력이 민중과 연결되는 정신적 네트워크의 핵심이었다.
따라서 이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교회의 권위를 해체하고 황제가 신과 직접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로 자리하려는 시도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수도사가 추방되거나 처형되었고, 아이콘은 공공장소에서 불태워졌다.
예술은 신을 찬미하는 수단에서 정치 권력의 위협이 되는 도구로 변했다.
아이콘의 파괴는 곧 예술의 침묵이자, 이미지가 지닌 ‘민중적 언어’의 봉쇄였다.
결국 843년, 황후 테오도라가 즉위하며 성상파괴운동은 종식되었다.
그녀는 아이콘을 복원하며 “이미지는 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신의 현존을 상기시키는 것”이라 선언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예술의 회복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신앙의 승리이기도 했다.
3. 예술의 존재론적 변론: 이미지의 힘이란 무엇인가
성상파괴운동은 결과적으로 예술의 존재 이유를 근본에서 묻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지는 단지 모사인가, 아니면 실재를 드러내는 언어인가?’
이 질문은 중세를 넘어 현대 미학까지 이어지는 철학적 문제로 남았다.
아이콘 옹호론자들이 제시한 논리는, 오늘날의 시각예술 철학에서도 유효하다.
그들은 이미지의 효력—즉, 보는 행위가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을 인정했다.
아이콘은 단순한 표상이 아니라, 감각을 통해 신성을 경험하게 하는 ‘상징적 실재’로 작용했다.
이 논리는 훗날 서유럽 예술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비잔틴의 상징적 평면성을 버리고 인체의 사실적 재현으로 나아갈 때조차, 그들은 여전히 ‘보는 행위의 신성성’ 을 계승하고 있었다.
즉, 성상파괴운동이 낳은 논쟁은 예술을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정신과 감각이 교차하는 매개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이미지의 힘, 예술의 숙명
성상파괴운동은 단순한 종교 개혁이나 정치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이미지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거대한 실험이었다.
비잔틴 제국의 아이콘 논쟁은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예술은 신을 대체하는 우상인가, 아니면 신에게 다가가는 길인가?
이 질문은 시대를 초월해 반복된다.
비잔틴의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리며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다.
반면 파괴자들은 그림 속 신을 두려워했다.
아이콘 앞에서 인간은 언제나 보는 자이자, 보임을 받는 존재였다.
성상파괴운동은 예술의 위기이자, 동시에 예술의 부활이었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이미지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